2022년 4월 5일 (화) QT / (롬 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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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제일교회 작성일22-04-05 04:55 조회3,0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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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화요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18~32절
■ 성경 본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남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심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 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 두심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 해설
18~23절: 개역개정은 생략했지만 18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내용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1:17)가 필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불의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당사자의 모습인 의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지만, 인간의 불의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외면함으로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을 찾기보다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긴다. 이러한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24~25절: 하나님을 찾지 않고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은 결국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러한 상태를 바로잡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26~27절: 창조주 하나님 대신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결국 자기 욕망을 섬기는 것이다. 동성을 향한 성적인 욕망과 관계가 그 대표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28~32절: 사람들이 마음(또 는 지식)에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적합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인간의 죄는 성적인 죄에 국한되지 않는다. 29~31절에 제시된 온갖 악덕 목록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버려 두신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함은 물론,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을 두둔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자신이 택한 악한 길에 대한 죄책을 덜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 묵상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 타내시는 무대입니다. 인간의 양심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장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인간은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있는 것들에 궁극적인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양심의 소리를 부정하며 자기 욕망을 한껏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태를 바로 잡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심으로써 그분을 떠난 사람들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것들을 넘어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으로 경배하며 섬깁니다. 또한 양심의 소리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지 않고 바로잡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결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죄의 본질은 무질서한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러한 상태를 바로잡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버려 두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세상에 뒤틀린 욕망과 온갖 종류의 악행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우상숭배가 낳은 결과에 내버려 두셨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와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정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죄를 두둔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읽고서 이를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만 여기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무질서한 욕망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무엇을 혹은 누구를 떼어 놓으면 삶이 지옥처럼 느껴질까요? 그것이 곧 우리의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 안락한 생활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면 사실상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 중심 질문
• 오늘 본문에서 만난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요?
• 시편 19편 1, 12절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 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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