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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QT)

2022년 5월 2일 (월) QT / (롬 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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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제일교회 작성일22-05-02 04:56 조회3,0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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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일 월요일

곤고한 나에 비친 나의 얼굴

로마서 77~25

 

성경 본문

거룩하고 선한 율법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 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해설

7~12: 1~6절을 오해한 이들은 율법이 죄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바울은 그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율법과 죄의 관계를 두 가지 측면에서 가르친다. 곧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는 것(7)과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에 죄가 하나님께 적 극적으로 반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13~25: 여기의 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 칼뱅이 지지한 전통적인 해석으로, “는 회심 이후의 그리스도인, 즉 바울의 현재적 고백이라는 것이다. 이는 본문의 시제가 현재이며, 성화의 여정이 죄와의 투쟁이라는 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22)라는 표현에 근거한다. 이와 달리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를 회심 이전의 모습, 즉 바울의 과거라고 주장한다. 이는 죄 아래 팔렸도다”(14)죄의 법의 포로(23)라는 표현이 앞서 언급했던 신자의 모습(6:22)과 모순된다는 것에 근거한다.

 

묵상

곤고한 나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현대적인 해석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의 단점은 신자의 삶을 너무 무기력하게 그린다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의 남은 여정이 비통과 탄식뿐이라면, 누가 이 여정을 힘있게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또한 신자의 죄를 너무 쉽게 합리화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현대적인 해석은 논리적으로는 뚜렷하지만, 죄의 유혹과 영향에 허덕이는 신자의 현실을 잘 담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결벽증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전통적인 해석이 죄에 대해 무감각한 이들에게는 현대적인 해석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양자의 입장을 모두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곤고한 나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은 지녔지만,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신자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곤고한 나는 성화의 여정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선물보다 자신과 삯을 더 의지했을 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곤고한 나를 거울삼아 자신을 잘 성찰합시다.

 

중심 질문

오늘 본문에서 만난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요?

 

사사기 22~3절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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