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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아, 노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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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진 작성일20-03-31 14:22 조회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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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참담한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일어났다.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 노무현에 대한 큰 연민과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는 노무현 전대통령(이하, 노무현)이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10년 전 노무현과 그 가족들이 모여 이런 회의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다.

 

몇 년 뒤 자신이, 남편이, 아버지, 또한 동생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있다. 온 가족, 본인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인생 역전, 달라진 가문사를 생각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감격하며 대통령취임식 장면을 황홀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몇 년 뒤 아내가, 자녀, 형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검찰에 불려 다니는 것도 보고 있다. 자신 또한 차량에 몸을 맡긴 채 하늘에서, 땅에서, 앞으로, 뒤로, 옆으로 온 세상이 주목하는 가운데 몇 시간을 부끄러움과 참담함과 때로는 그 와중에서도 졸리는 육체적 본능을 원망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 짓는 것을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을 그 길로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만은 그 길에 서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 서울 서초구 검찰청사 앞의 검고 어두운 우면산 터널을 지나는 장면이 스크린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며칠간 불면의 밤을 보낸 뒤 천년 같은 시간을 아끼듯 아주 느리게 컴퓨터 시작 단추를 누르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한글은 빨리 열리는지 유서쓰기를 재촉하는 듯 커서(cursor)가 깜박깜박 거리는 것을 보고 있다. 불과 몇 분 만에 유서를 남기고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듯 부엉이 바위 위에서 쓴 담배 하나 피울 수 있는 여유도 없이 이를 앙 물고 깊게 패진 주름살을 더욱 찡그리며 특유의 미소도 짓지 못한 채 몸을 날리는 것도 보고 있다.


그때에 사회를 보는 분이 홀연히 나타나 하늘 사자인지 재판관인지 핏기하나 없는 얼굴로 냉엄하게 선포하듯이 가족들에게 묻는다.

 

대통령 할래. 아니면 대통령하고 난 뒤 자살해 죽을래 (대통령 포기할래),”


남편 대통령 되고 그리고 너는 영부인 될래, 아니면 남편 죽는 것 보고 그것 때문에 평생 가슴아파할 것 생각하며 영부인 되지 않을래


아빠 대통령되고 대통령 자녀로 선망의 대상이 될래, 아니면 아빠를 가슴에 묻어놓고 평생 상처가운데 살아갈 것 생각하며 포기할래


어떻게 하였을까? 노무현과 가족들은 대통령을 선택하였을까? 아마 대통령을 과감히 포기하였을 것이다. 그저 기타 치면서 손자들 재롱을 보고, 둘이 얼굴을 마주보고 웃음 띠우며 쌍꺼풀 수술을 했을 것이고, 듣든지 말든지 큰소리치며 온 세상을 호령하며 쓴 소리를 해대는 그런 소박한 기쁨을 선택 하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가족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대통령이 됨으로, 부엉이바위는 한국 정치사의 함흥(태종집권이후 여전히 영향력을 가졌던 이성계의 함흥차사!), 프레스센타, 세실레스토랑, 관훈클럽의 상징이 되지 못하고 자살바위가 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됨으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의 사주(?) 상으로 만족해 살 수도 있는 위치에서 졸지에 어색한 영부인의 얼굴 상을 가졌고, 더 이상 함박웃음을 지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눈치와 자신의 가슴 한 켠 늘 둥지를 틀고 있는 어두운 굴레를 안고 살게 되었다.


대통령이 됨으로, 평범한 대통령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조차 버금었는데 이제는 의혹과 동정의 눈초리마저 더하게 되었다.


몇가지 영적인 큰 교훈을 얻는다.


1. 권력은 돈하고 결탁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 전 온 가족을 모아놓고 신신당부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빽도 없고 재산도 없다. 우리는 맨주먹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도덕성이다. 국민이 무기이다. 그러니 절대 돈하고 무관해야 한다. 어떠한 돈도 받지 마라. 역대 대통령하고 내가 다르다면 오직 그것이다. 그것 때문에 국민들이 뽑아줬다. 이것 하나만 잘 지키면 나와 여러분은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


전직 대통령, 정치인, 경제인이 돈 때문에 말년이 추하게 되어 버린 것을 노무현과 가족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가족들이 자신의 신조를 잘 따라줄 것이라 믿었는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되었다. 노무현의 신조를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이 왜 돈하고 결탁되었을까? 더구나 대통령의 옆에서 대통령과 한 침실, 이불을 덮고 자는 영부인이 왜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바로 염려때문이다. “미래에의 염려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과 연관되어 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여사,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그녀의 유명한 문장인 권력에의 부패에서 보면, ‘권력은 왜 부패하는가, 이미 경제력을 갖춘 많은 공무원들이 왜 부패하는가? 왜 뇌물을 받고 축재하는가? 그것은 바로 미래에의 염려 때문이다.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미래를 염려하는 죄성 때문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염려하게 만든다. 말세의 모습 중에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22:34)라는 말씀이 있듯이 사람들을 염려함을 일으켜 타락하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6:27-31)


2. 권력은 하나님께로서 주어졌음을 알고 사명감으로 모든 것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요셉을 보라.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하고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대면하자, 두려움에 떨고 있던 형들에게 인간적인 보복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운운하며 위로하였다.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권력마저 언제 사라질지 모르고 아침안개처럼 없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니엘을 보라. 그는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다. 모든 정치적 공세와 모략 가운데서도 자신의 신앙과 비전을 잃지 않았다. 모세, 그의 관심은 세계 최강국 이집트의 왕이 아니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이었다. 에스더, 그는 왕비에서 쫓겨나 사약을 받을 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 “이때를 위함이라이라는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자신이 왕비가 된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담대한 행동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요셉이 하나님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국무총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의 요셉의 일생을 볼 때 국무총리 되는 것을 부각하여 잘 되는 것만 너무 강조했지, 노예생활과 감옥에서의 고난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히 했다. 먼저 그의 인생 중에 노예와 감옥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을 봐야 한다. 노예로 팔려갈 때 요셉의 나이는 372절에 근거해서 17살 정도라고 추측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겨우 17살에 먼 이국 땅에 노예로 팔려 갔다. 그리고 잠시 보디발의 집에서 영광을 누리다가 또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갔다. 감옥생활은 1-2년 정도가 아니라 한 10년 정도 걸렸다. 17살부터 노예로 팔려 왔고 나중에 총리가 될때 삼십세였으니까 그 사이에 십삼년의 간격이 생긴다다. 이것이 작은 고생인가?

시편 105편 말씀을 보면,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발이 착고에 상했다는 표현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가 묶여 있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역사적인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이 시대의 애굽의 감옥들은 지하 토굴이었다고 한다.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를 지하 감옥에 가두었는데 일 년 내내 햇빛 한 번 안들어 오는 곳에 가두어 놓았다. 음식만 넣어주고 끝이다. 문둥병이 걸린 줄도 아무도 몰랐다. 그런 곳에 요셉이 들어가 살았다. 방마다 차단되어 있고 쇠사슬에 묶여 있다. 여기서 <>이라는 글자 옆에 ‘3’이라고 써 있다. 밑의 난외주의 3번을 보면 [, ()]으로 되어 있다. []는 히브리 원어라는 표시이다. 히브리 원어로 <>[]이라는 뜻으로 몸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게 아니라 그의 혼이 쇠사슬에 매인 것이다. 우리 나라 말에도 혼비백산이라는 말이 있다. ‘혼 빠졌다’ ,‘혼 났다라는 그 혼이다. 이러한 요셉의 고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십 몇 년 동안 고생하더라도 국무총리되고 싶은가? 아니면 고생안하고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요셉한테 무릎 끓는 형이 되고 싶은가? “고생 안하고 그냥 총리되면 안됩니까?” 이것은 안된다.


세상 속의 인생은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삶이 반드시 수반된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치 말고 살아가야 한다. 그 자리가 감옥이든, 노예의 자리이든, 구덩이 빠져서 하늘 한 뼘만 보이는 자리이든 그것을 연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연단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이 계속 일어난다. 너무나 안되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의 삶의 행보상 앞으로 더 큰일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 뿐이다. 그러나 자살은 안된다. 국민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면 안된다. 혹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상대화했어야 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교훈은 비록 정치가, 경제인 뿐 아니라 우리 종교인에게도 큰 경종을 울린다. 어느새 교회와 교단 내에 권세 아닌 권세가 들어와 버렸다. 약간의 권세라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 간에 감정이 상하고 파벌이 생기고 상처가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권세를 상대화 하라. 가능한 권세를 가지지 마라. 혹시 권세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섬김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권세를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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