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의 문, 선한 목자라(2) -요10장 > 담임목사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담임목사
담임목사칼럼

나는 양의 문, 선한 목자라(2) -요10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동춘 작성일21-06-19 20:57 조회511회 댓글0건

본문

또 양들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개나 고양이는 자기가 갔던 길을 다 기억을 하고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양은 똑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하여 다녀도 그 길을 익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항상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상의 비유에서 목자는 예수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시편 23편 잘 아시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시편 23:1,2) 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목자에 비유하며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이사야 40:11)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맹인 같이 슬픔과 절망 가운데 살던 자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또 사마리아 여자와 같이 사랑에 목말라 하던 사람도, 탕자와 같이 허랑방탕하게 살던 사람도 다 어둠 가운데서 불러내어 밝고 환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이름과 형편을 다 아시고 이름을 하나씩 불러서 어두움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사랑의 목자이십니다.(13:20) 문제 많은 인생들을 일일이 구원해 내시고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생명수 흐르는 시냇가로 인도해 주신 오, 주님. 그 주님의 크신 사랑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7절에 오늘의 주제 구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9절에 양의 문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이 있습니다. 오늘 암기해야 할 주제 구절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암기하십시오. 7, 9절을 연관해서 주보에 올려 놓았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의 문이란 양들을 아침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내는 문이요, 저녁에는 양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생명을 보호해 주는 문입니다. 양의 문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양의 문이다, 사실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을 보았는데, 딱 이거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문을 들어가면 구원을 얻습니다. 10절에는 생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어 먹습니다. ‘이란 생명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 꼴을 들어가며 나오며 얻는다는 말은 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마치 양들이 아침에 양의 문에서 나와 하루종일 꼴을 뜯고, 저녁이 되면 문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여 양들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더욱 풍성해지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며 나오며 사는 사람들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사랑과 평화,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메마른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신 양의 문임을 알고, 이 문 되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무거운 삶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나는 선한 목자라 (1115)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럼 목사는 어떤 목자입니까? 선한 목자교회 유기성목사님이 제가 연변에 있을때 코스타 강사로 오셨는데, 제가 물었습니다. 교회 이름이 왜 선한목자교회입니까? 선한 목자가 누굽니까? 목사님이 선한 목자입니까? 하니까 목사님이 펄쩍 뛰었습니다.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선한 목자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못합니다. 물론 성령충만 할 때는 하나님 저 성도 대신에 저를 데리고 가십시오!!” 하다가도, 주님이 그래, 내일 데려갈까? 하면, “아이고 하나님 그래도 아들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자, 손녀도 한 번 봐야지요, 서울제일교회 요한계시록까지는 설교해야지요, 제일교회 부흥하는 것 보고 가야지요...” 합니다. 결국 저는 목자의 정체성보다는 목견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개.ㅡㅡ 왈왈왈. 양들이 선한목자 예수님 잘 쫓아가도록, 이단이나 다른 절벽에 가지않도록 왈왈왈 멍멍멍 짖으며 인도하는 개입니다. 다행히 선한목자 예수님의 반려견입니다!!!

예수님은 양떼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나운 짐승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기가 맡은 양떼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책임감이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양을 물고 간 사자를 쫓아가서 그 입을 찢고 양을 구출해 냈습니다.(삼상 7:34-36) 이렇게 양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희생적으로 싸우는 것이 바로 목자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의 가죽을 쓴 이리와 같은 바리새인들과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양들을 위해 오셨고, 양들을 위해서 사셨고, 또한 양들을 위해 죽으신 참된 목자이신 것입니다.

12-13절에 삯군 목자가 나옵니다. 삯꾼 목자는 양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이 없기 때문에 허약해서 쓰러지는 양, 굳이 딴 길로 간 양을 찾거나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20% 손실이 나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삯꾼 목자에게서 양은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한 두 마리 없어진들 어떠하리입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 예수님은 다릅니다. 양을 찾아서 광야까지 갑니다. 혼자서 걷기도 힘든 유대 광야 길을 탈진한 양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기도 합니다. 또한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이리떼를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십니다. 마치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부모가 많은 희생을 감수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목숨을 버린다,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4번이나 반복됩니다. 마치 노래 후렴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나는 목숨을 버리노라. 가나다라마바사... 나는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목숨을 스스로 버리노라! 버리노라!!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각기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던 정말 이리와 같은 양인 우리를 위해 죄의 대가인 죽음을 예수님께서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영원한 생명이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슬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어려운 인생살이를 아십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몸부림치면서도 또 죄를 짓고 마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거짓 목자가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만이 참 된 목자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목자는 한 분이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서울제일교회 (담임 : 김동춘 목사)
우04707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8길 1-1 | T.02-2293-1656(교회) , 02-2293-1665(목사관) | sfcccm@hanmail.net
Copyright ⓒ sjeilch.kr All rights reserved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