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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의 문, 선한 목자라 -요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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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춘 작성일21-06-19 20:55 조회772회 댓글0건

본문

< 나는 양의 문, 선한 목자라 >

 

* 본 문 * 10:1-15

 

오늘 본문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은 7개의 표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7개의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누구누구이다! 하는 선포입니다.

앞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보이신 후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음한 여인을 정죄치 않으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10장에 두가지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두가지 선언이 10장에 있으니 10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0장은 내용적으로도 요한복음의 중심 장입니다. 21장의 중간에 있어서 중심장이기도 하고, 내용적으로 그렇습니다. 내용적으로 목자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설명되어 지고, 끝인 21장에서 베드로에게 네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면서 목자의 사명을 주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10장이 연결고리가 되는 셈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중심을 잡고, 마지막으로 복음의 전파의 사명으로 끝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양의 문이요, 목자 되심을 설명하시는데 조금 과격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먼저 1절에 절도, 강도가 나옵니다. 10절에 도둑이 나옵니다. 그리고 12-13절에 삯꾼 목자가 나옵니다.

뭔가 예수님과 비교되는 양들을 해치고 양들을 잘못 인도하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삯군 목자는 누구일까요? . 바로 9장에 맹인을 출교시키고,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한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서 양을 훔치고 빼앗는 자입니다. 또한 양들을 지키는 척하다가 이리가 쳐들어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양의 문입니다. 그리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까지 지키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1. 나는 양의 문이라 (1-10)

먼저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2절 보십시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3절 보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했습니다.

우와아!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고, 목자는 양의 이름을 일일이 각각 불러 인도한다, 놀랍지 않습니까?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압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겉모양뿐 아니라 그 양의 습성이나 성질, 건강 상태, 자라온 환경, 양의 장,단점 등 모든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붙혀 준다고 합니다. 얌전하다고 <얌전이>, 점이 있다고 <점박이>, 또 예쁘다고 <예쁜이>, 우리가 개 이름을 꼭 지어 붙이듯이 목자는 양들의 하나하나의 특징을 생각하며 가장 합당한 이름을 붙여 줍니다.

저는 몽골에 갔을 때 한 목자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저 양들의 이름을 다 아느냐고요, 안대요. 그래요? 그럼 양도 그 이름 부르면 알아듣습니까? 하니까 당연하대요. 그럼 한 번 불러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통역했지만요. 양의 이름이 징기스칸인데, 목자가, “징기스칸!” 이렇게 부르니까, 그 중에 한 양이 음메에우우우~~~”(, , 징기스칸♪♬)

더구나 이스라엘의 양들은 털을 제공하는 양들이었기 때문에 늙어 죽을 때까지 목자와 함께 삽니다. 그래서 목자와 양 사이에는 더욱 깊은 사랑의 관계가 맺어집니다. 목자는 양과 일대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4절을 보십시오. 목자가 앞장 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간다고 합니다. 5절에 보면, 양들이 타인의 음성은 절대 모르고 타인이 데리고 가면 도망간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기가 막히게 알까요? 한 전문가의 말을 들었습니다. 양이 좀 크면, 먹이를 주지 않고 굶긴다고 합니다. 굶어서 거의 비몽사몽 직전에 이르면 양의 이름을 부르면서 먹이를 준다고 합니다. 간헐적 금식이 여기서 시작된 것인가 봅니다^^ 고렇게 몇 번하면 목자의 음성을 완벽하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목자의 음성을 희환하게 아니까 목자가 앞장 서서 갑니다. 소나 말은 고삐가 있지만 양은 고삐가 필요 없습니다. 목자가 앞서 가기만하면 양은 안심하고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유대 지형은 아주 험합니다. 유대 중심부는 고지대이고 거칠고 황폐한 돌산들이 많습니다. 낭떠러지도 많습니다. 무서운 맹수들이 먹이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항상 양무리들의 앞에 서서 그 길이 안전한지 또는 사나운 맹수가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안심하고 따라갑니다.

양이 이렇게 목자의 음성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양이 살 길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 토끼, 다람쥐, 염소... 이 동물 중에 가장 약하고 불쌍한 동물이 뭘까요? 바로 양입니다. 토끼나 다람쥐, 알아서 잘 뛰고 잘 숨습니다. 염소는 양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염소는 뿔이 있습니다. 양은 뿔이 싹 말려 있고, 발도 짧고 잘 뛰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양들은 이렇게 약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 목자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양은 목자에게 자기의 생명과 삶을 온전히 맡기고 절대적인 자세로 따라가도록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얼마나 험악합니까? 음란하고 패역합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죄의 유혹은 끈질깁니다. 반면에 인간은 너무나 연약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온갖 세상의 유혹의 소리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소리들이 우리를 끕니다.(‘성주 참외가 왔습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세상은 온갖 유혹거리들이 판을 칩니다. 술을 권합니다. 타락을 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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