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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된 예수님을 만나 빛을 찾은 맹인이야기 -요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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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춘 작성일21-06-12 21:58 조회562회 댓글0건

본문

< 빛된 예수님에게 빛을 발견한 맹인>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주여! 내가 믿나이다

 

* 본 문 * 요한복음 9

 

오늘 본문은 세가지의 큰 교훈이 있습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은 인간의 불행을 해석하는 새로운 영적인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된 자를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애인 중에 제일 힘든 분들이 시각장애인인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 헬렌 켈러 (Helen Keller, 1880-1966) 아시죠? 헬렌 켈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삼 일만 볼 수 있다면, 첫째날은, 사랑하는 선생님의 얼굴, 밖으로 나가서 자연과 석양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둘째날에는 박물관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 셋째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리고 영화를 보고, 시내 거리를 보고 난 뒤 집에 와서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시지요?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그런데 헬렌 켈러는 나면서부터 맹인은 아니었습니다. 맹인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자가 있고, 처음에는 정상이었다가 사고나 병으로 맹인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면서부터 맹인된 자만큼 불쌍한 자가 없습니다. 중간에 시력잃으신 분은 색채 사물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근데 본문에 나오는 분은 전혀 인식이 없습니다. 예를들면, ‘빨간장미가 담장에 가득찼다’. 담장, 빨간색, 장미 전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는 부모님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고, 일생동안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맹인은 하나 더 보태어 거지였습니다.(8) 태어난 집도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걸하러 다니는 맹인 거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맹인된 것이 죄 때문이다고, 죄와 연관시키는 아주 안좋은 문화 습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맹인과 맹인의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앞 장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습니;. 예수님은 숨어서 성전에서 나가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맹인을 보셨습니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불쌍해서 불쌍해서 긍휼의 눈빛으로 쳐다보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묻습니다. 2. “선생님, 이 사람이 이렇게 앞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인간의 불행을 죄의 대가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고난 당한 사람이 있으면 침묵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옆에서 자꾸만 이러쿵 저러쿵하면 당사자는 정말 힘듭니다. 신약성경에서 요셉이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와 잠자리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습니다. 만약 남자들 가운데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런데 본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잘 견뎌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괜히 이러쿵 저러쿵합니다. 고난 당한 사람이 침묵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가만 있는 것이 옳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남의 고난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제일 좋은 건 뭘 모르면 입 다물고 계십시오. 알지도 못하면서 나설 때 문제가 됩니다. 사실상 우리가 접하는 일들 가운데 상당수는 잘 모릅니다. 교회를 갔는데,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 그런데 찬송을 안불러. 너무 밉상입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듣고보니 편도성 암 수술로 목소리를 못내었고, 중간에 기침이 있을까봐 안으로 못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모를 때는 입다물고 있는 것이 최고입니다. 사실 고난이 왜 오는지 백 가지가 있다고 하면 다섯 가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죄 때문에 이루어졌다, 연단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또 하나님의 멋진 프로그램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남의 고난 앞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고난을 일반화시키고 단순화 시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면서 고난은 죄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얘기한 것 같습니다. 둘째, 이러쿵저러쿵 하려면 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공유하고서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하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못하면 꾸짖고 심지어는 막 욕도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책임지겠다는 것 아닙니까? 네가 아플 때 같이 아프고 네가 어려움 당할 때 같이 어려움 당하겠다, 책임감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질책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때는 책임질 때만 말하십시오. 너 왜 그렇게 사냐? 그럴 때는 자기가 뛰어들어가서 돈이라도 대주면 그런 얘기하는 거지, 그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 당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이 사람의 불행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This happened so the power of God could be seen in him”. 영어성경에는 하나님의 파워가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불행을 누구의 탓으로만 생각하면 더욱 불행해질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뭔가 모르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그래서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아이고, 재는 우리가 안 낳을라 했는데, 그만 조절을 잘못해서 나왔어?” 이런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 듣습니다. 사춘기 때 그것이 나쁘게 나타납니다. “나는 태어나지 않을 인생이었어, 차라리 안 태어 났더라면, 나는 실패한 인생이야.” 이렇게 괴로워하며 아파트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들 자식들 앞에서 말조심해야 합니다.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너는 우리 인생의 보배야, 우리 가정의 세굴라야!!! 하나님의 선물이야!!!

이 말씀을 믿는 우리는 비록 내 삶 속에 불행한 일, 절망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나의 불행이, 나의 절망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불행을, 나의 절망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이사야 45:7)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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