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장 생수를 마신 사마리아여인 > 담임목사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담임목사
담임목사칼럼

요4장 생수를 마신 사마리아여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동춘 작성일21-05-29 22:08 조회807회 댓글0건

본문

<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셔라 > (2021.5.23.)

4:3-14

 

제가 이 본문의 설교를 2년전 이맘 때 했는데 기억나십니까? 은기철장로님은 적으시니까 혹시 기억하실거고ㅎㅎ 네. 까먹어도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설교 계속 우라 먹죠ㅋㅋ

저는 이번 주에 요한복음에 나타난 시간을 집중 연구했습니다. 요한복음 샅샅이 뒤져보니 총 4군데 시간이 등장합니다. 안드레를 부를 때(139)‘10’, 오늘 사마리아 여인 만날 때(46)‘6’, 같은 장 왕의 신하의 아들이 나았을 때(52)어제 저녁7그리고 한가지가 빌라도법정에서(1914)6시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 개나 시간을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결정적으로 이상한게 빌라도 법정의 6입니다.

보통은 이 시간들을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한 시간 개념을 적용해서 6시간을 더한 시간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 개념을 적용해서 요한복음을 읽으면 너무 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간대는 로마시간대 즉, 현재 우리의 시간으로 해석하는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료들을 보니 요즘 신학자들은 점점 이 해석을 하는 추세입니다.(조석민교수, 권해생교수, 황원하박사 등)

- 저자인 요한이 유대인의 사회문화적 및 종교적 관습보다 로마의 사회문화 및 정치적 영향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에는 1148절에 명시적으로 로마인이 언급되고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가 라틴어, 즉 로마어로도 기록되었음을 강조합니다.(히브리어ㆍ라틴어ㆍ헬라어, 19:19) 갈릴리(바다)’ 대신 디베랴(바다)’라고 하면서, 로마의 공식적인 지역 명칭을 사용합니다(6:1, 6:23, 21:1). 이것은 로마의 정치적 영향 아래 살고 있는 독자를 배려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식 시간대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근거들을 더 보면요,

-신약에서 10시와 7시는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공관복음이 제369시로 기록되는 데에 비해서 요한복음에는 구체적 시간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의 시간대가 이미 특별나다는 것입니다.

 

- (i) 139절에서 예수가 첫 제자 안드레를 부르고 난 다음 그 날제자들과 함께 계속 시간을 보내며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때를 열 시쯤이라고 하는데 유대식으로 보면 오후 4시가 되어 오후 6시까지 2시간을 머물고 그 날온종일 머물렀다고 하는 것은 말의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마식으로 오전 10시라고 보면 의미가 통합니다.

또 안드레가 형제 시몬을 예수께 데려오는 것도 나오는데 그 시간을 따지면 오전이라고 해야 적절합니다.

 

(ii) 46절에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난 시간을 여섯 시라고 하는데, 이것을 지금까지 몇 시로 해석했죠? 정오로 해석했습니다.

 이런 시간대 계산 때문에 사마리아 여인을 굳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물을 길러 왔다,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아주 왕따를 당한 여인이다, 심지어 부정한 여인, 창녀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녀가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서 물을 깃는 시간은 주로 해가 질 때 입니다.(24:11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 유대 땅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였을 때 오후 6시면 사마리아 땅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 출발했는데 점심때 사마리아 도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 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하룻밤 유하기를 청한 것으로(40) 보아도 저녁 6시가 적당합니다.

 

(iii) 452절에서 갈릴리 가나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은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일곱 시라고 하는데, 만약 이것이 유대식이라면 오후 1시가 되어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4~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어제라고 하면서 하루가 지났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는데 하루 안에 집에 갈 수 있는데,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저녁 7시로 보면 그가 자연스럽게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것이 적당합니다.

 

(iv) 1914절에서 예수가 십자가 지기 전 재판 받는 시간이 제 육시라고 하는데, 이것이 유대식으로 하면 현재의 정오가 되는데, 이게 말이 안됩니다. 한창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시간에 빌라도에 판결받았다, 이게 아주 결정적입니다(15:25제 삼시오전 9시이다). 하지만 이것을 로마식으로 보면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 재판 시간이 대략 오전 630분경이 되어 그 이후에 십자가를 지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결국 우리 성도님들도 요한복음의 시간을 로마식 즉, 우리 시간으로 다시 한 번 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그 다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남자를 밝히는 음란한 여인이라는 오해입니다. 남편 5명도 모자라 한 명 더 있다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유대인의 배경으로 다시 보면, 여자 쪽에선 오히려 불쌍하다고 봐야 합니다. 유대는 가부장적 사회입니다. 여성이 이혼할 수 없습니다. 경제권도 없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조강지처 버리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면, 이 여인은 남편이 죽었고, 또 아이마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정책적으로 하는게 뭐죠? 친척들이 계대 결혼을 해 줍니다. 그것을 뭐라고요? 제가 레위기할 때 강조했는데... “고엘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여인은 율법에 의해서 자연히 남편을 배정받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계속 버리는 겁니다. 아이가 들어서면 끝이 나는데, 아이도 안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다섯 명째 남편이 바뀌고 혹은 버림받고 지금 또 여섯 번째입니다. 얼마나 기구하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만약 이 여인이 왕따당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부정하거나 창녀같은 여인이었다면, 29-30절에 자기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서울제일교회 (담임 : 김동춘 목사)
우04707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8길 1-1 | T.02-2293-1656(교회) , 02-2293-1665(목사관) | sfcccm@hanmail.net
Copyright ⓒ sjeilch.kr All rights reserved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