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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떠나는 자, 파는 자, 따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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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춘 작성일21-05-29 21:57 조회580회 댓글1건

본문

서론 나는 진짜 제자인가?

오늘 말씀(6:66-7:5)은 우리를 좀 불편하게 합니다. 너희가 가짜 제자인가, 진짜 제자인가? 진짜 제자가 되어야 한다를 강조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 보십시오. “너희도 가려느냐?”. 성도님들 달래고 위로해야 하는데, 가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나 때로는 성경을 시리즈로 설교하다 보면, 성경에 있는데 예수님의 마음이 나타나는데 그걸 Skip 할 수 없습니다. 내 입에 좋은 것만 내 귀에 좋은 것만 말씀을 듣고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 과감히 살펴봅니다.

* v2v22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도전합니다. 제자를 분류해 버립니다. 가짜 진짜를 분명하게 판단합니다. 겉과 속을 구분합니다(8:31, 15:2)

6장은 오병이어 기적 사건이 나타납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 2만명이 먹었으니까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4복음서에 다 기록할 정도로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중에 일부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15)

이 어른이 임금 되면, 로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다. 병자 다 차료 받고 먹고사는 문제 다 해결되겠다그래서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기 배 부를려고 찾고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표적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강하게 요청합니다. 27절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이거 암기해야 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그러니 또 그들이 묻습니다. 28-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ㅡ집 팔아서 헌금하고, 40일 금식하고, 직장 그만두고 선교사로 가야 합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29절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하나님의 일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 일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에 따른 삶입니다. 이게 하나님 일입니다. 뭘 하는게 아닙니다. 바로 믿는게 하나님 일입니다. 영어로, Do가 아니라 Done입니다. 지금 뭐하는 것 Do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되어진 Done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원. 부활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믿음으로 은혜를 누리고, 말씀을 순종하고, 복음을 누리는 것, 이게 하나님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설명합니다. 나는 곧 생명의 떡이다. 네 번이나 강조합니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떡이다. 나의 떡을 먹으면 영생한다. 나의 살을 먹으라, 나의 피를 마셔라 그러면 영생한다.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수근거립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세 부류로 나누어 집니다.

 

 

본론

본문 제자 유형

예수 떠나는 제자 v66

예수 이용하는 제자 : v64, v70 (유다와 예수님의 가족이 있습니다)

예수 끝까지 따르는 제자(베드로와 열 제자)로 나누어 집니다.

예수 떠나는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위해 따르는 제자

그들이 예수를 떠난 이유는 예수님을 오해하고, 자기 식대로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 때문에 서로 다투고(52), 수군거리면서 이 말씀 못듣겠다(60-61)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왔대

자기가 자꾸 죽는대 성취. 성공을 원하는데, 죽는대

자기의 피와 살을 먹어야 된대

말씀을 이해 못합니다(60). 결정적ㆍ더 근본적 이유 : 예수님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꾸 버리고 비우고 죽이고 하는데 그런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제 아들도 목사이고 아버지도 목사인 결혼식에 갔는데, 아들의 아버지 혼주가 축사를 하였습니다.

주례자가 아들 목사에게 설교하면서 종이 되라고 했는데, 좀 섭섭했습니다. 나도 30년째 종으로 살고 있는데, 아들도 또 종이 되라니. 종의 대물림이 서글픕니다.” 모두 웃었습니다. 물론 농담으로 하였지만, 우리보고 이렇게 종이 되라고 하면 주님을 떠날 사람이 안 많겠습니까?

 

 

두 번째, 제자로 들어왔는데 기회를 놓친 제자입니다. 예수를 이용하는 제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제자입니다. 가룟 유다가 있고, 예수님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댓글목록

김동춘님의 댓글

김동춘 작성일

본문 7장 초반에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보고 예루살렘에 가라고 하십니까? 참 멋있게 보이지요? 왜 예루살렘에 가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세상에 멋있게 드러내고 임금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5절에 탄식하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고 예수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③ 셋째, 예수님을 진짜로 따르는 제자입니다.
  제자들이 떠나가니 예수님은 씁쓰레 했습니다. 66절입니다. 떡 먹고 병 낫고 할 때는 구름떼처럼 모여 다니고 따라 다니더만, 십자가 이야기하고 죽음이야기하고 하늘나라 이야기라니 떠나가는구나. 자 열 두 제자들, 열 두 제자들아, 분명히 똑똑히 대답하거라. 갈 길을 정하거라.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떠나가려느냐?”
  열 두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이 질문 속엔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고독감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자, 이때 찐이 나타났습니다. 찐 제자가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나서는 것은 베드로가 항상 1등입니다. 오늘 말씀보면 베드로가 참 멋있습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한 지요?
  68절입니다. “주여, 우리가 따르는 것은, 병낫기 위해 떡 먹기위해 출세하려고 따르는게 아니라. 말씀, 진리되신 말씀이 여기 계시니 따르는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말씀을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님의 수제자다운 멋지고도 시원스런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69절에, 덧붙여서,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다. 이 거룩에 대한 고백은 요한에 4번 나옵니다. 거룩, 하기오스 이 단어는 삼위 하나님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생의 길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믿고 알았다? 보통 알고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믿고 알았다고 합니다. 알고 믿은게 아니라 믿고 안 것입니다.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믿고 보니 다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러셀이란 무신론자 철학자의 책 중에, “Why I am not a christian”(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있는데 거기 보면, 기독교가 비논리적이서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르의 고백이 뭡니까? 믿고 압니다. 알고 믿은게 아니라, 믿고 보니 비논리가 풀어집니다. 러셀은 자기는 자유자이다 라고 하면서, 이혼을 3번하고 결혼을 네 번이나 하였습니다. 부럽습니까? 저는 이 분이 자유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다 풀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고리타분한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 안에서,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풀려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말씀합니다. 그 가운데 베드로의 고백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떠나갈래? 할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은 70절의 말씀처럼 응답하십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했다. 내가 너희들을 택했다. 택한 제자이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것을 원문으로 보면, 긍정을 유도하는 뜻이 있습니다. 너희는 안가겠지? 너희는 안가겠지? 너만은 안가겠지? 너희들은 안떠나겠지?그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시다.
  그럼요, 예수님,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누구에게로 갑니까요? 절대 안갑니다. 주여, 다른 사람들은 다 가더라도 우리는 안갑니다. 이 고백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 결론
  성도님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차 시동 거는 것 아시죠? 마치 좋은 차 타고... 휘발유 다 채워놓고, 좋아하는 사람과 앉았는데 시동을 안 거는 것입니다. 시동 딱 걸면 되는데... 교회 나와서 이제 하나님의 집에 왔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는데, 딱 시동을 안 거는 것입니다.
1998년 여름수련회에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제 목숨과 생명, 저의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울면서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게 두가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버릴 것에 대한 슬픔이고, 얻을 것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버릴 것에 대한 슬픔에는 눈물 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얻은 것에 대한 기쁨에 영광의 눈물이 났습니다. 얻을 것이 버릴 것과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얻을 것의 풍성함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기쁨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떠난 자인가? 배반자인가? 따르는 자인가? 어떤 제자입니까? 오늘  예수를 따르는 자이다. 예수를 따라 갈 것이다. 고백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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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이 찬송에 대해 그 배경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이 찬송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성가’로 알고 있지만, 실은 인도의 옛날 찬송가입니다.(가사 띠어주세요!!)
  19세기 중반, 동북 인도의 메갈라야에 사는 한 종족의 녹셍(Nokseng) 이라는 사람과 그의 가족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 들였는데, 그 마을의 추장이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자 담대하게 “나는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거기에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1절이 작사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정하면, 그의 두 자녀와 아내를 살려 준다고 했지만, 그는 2절 가사를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들을 죽일 지라도 우리는 뒤 돌아서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두 자녀와 아내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는 세상을 등지고 내 앞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라고 외치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녹셍과 그의 가족의 죽음이후 마을 추장을 비롯한 온 마을 사람들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나중 오늘의 복음성가로 탄생했습니다.
  혹시 참 제자,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라는 고백으로 이 찬양을 드립시다.

 1)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2)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3)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서울제일교회 (담임 : 김동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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