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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북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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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진 작성일20-03-31 16:19 조회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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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전문역(前門站, 예전엔 정양문이라 했고 자금성의 첫 내성 관문이다)에서 서쪽으로 두 정거장을 가면 선무문역(宣武門站)이 있다. 이 역 북쪽의 선무문대가(宣武門大街) 동쪽에 남당(南堂)이 있다. 또 북경의 최고 번화가인 왕부정대가(王府井大街)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롯데백화점 옆에 동당(東堂)이 보인다. 천주교 성당인 남당과 동당은 1644년 아담 샬과 만난 소현세자를 비롯하여 한국의 인사들과 많은 관련이 있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보면 남당에 대해 기술하면서, “내 친구 담헌 홍대용은 일찍이, 서양인들의 기술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면서 당시 남당에 대한 홍대용의 풍금에 대한 이야기와 남당에 나오는 서양화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이처럼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북경기행문(燕行記)열하일기에는 북경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많다. 특히 4편의 관내정사5편의 막북행정록에서는 산해관부터 북경까지, 북경에서부터 열하까지의 여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는 통주의 과거 모습과 조양문 안의 사신이 묵었던 장소, 북경의 성곽들, 자금성, 천단에 대한 묘사, 동물원, 유리창과 관상대 등에 대한 기록도 있다. 또한 북경에서 보았던 개, 호랑이, 코끼리, 낙타, 말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돋보인다. 특히 열하일기에는 박지원의 종교관, 유교관, 만주족의 한족 통치관, 건륭제의 열하행 속내 등에 대해서도 독특한 관점으로 설명하여 가히 박지원의 세계관이라 할 정도로 놀라운 필력이 드러난다.


박지원은 44세 때인 1780(정조5)에 영조의 부마인 삼종형과 함께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 축하사절단으로 북경에 가게 되자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많이 남겼다. 그런데 왜 북경일기가 아니라 열하일기일까? 박지원 일행이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소식은 황제가 열하 지금의 승덕 피서산장(당시 이름은 열하행궁”)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약소국의 설움을 안고 박지원 일행은 4일을 자지 않고 말을 달려 겨우 열하에 도착하여 황제를 알현한다. 그래서 의주에서 심양을 거쳐 북경에 이르는 과정만이 아니라 지금의 순의와 화이로, 밀운을 거쳐 승덕에 이르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연경에서 열하로 갈 때 창평으로 길을 잡으면 서북쪽으로 해서 거용관(장성)이 나오고, 밀운으로 길을 잡으면 동북쪽으로 해서 고북구(장성)이 나온다”(야출고북구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열하일기는 지금의 북경의 시내와 시외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나와 있어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서 살펴보면 큰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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